2023. 11. 1. 21:55

출생
1897년 7월 25일

고향 출생지
조선 평안남도 평양부

사망
1926년 8월 4일 (향년 29세)
대한해협??

주요 학력
평양숭의여자중학교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 / 졸업)
도쿄음악학교 (갑종사범과 / 수료)

과거 직업
가수, 성악가
장르
서양 고전음악, 대중가요

'사의 찬미' 남기고 실종된 윤심덕 죽음 둘러싼 미스터리, 90년 흘렀어도 여전히 미궁
- 2011. 6. 5.

6월 5일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갑자기 실종된 조선 최초의 대중가수인 '사의 찬미' 윤심덕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추적했습니다.


1926년 8월 부산을 향하던 배 도쿠주마루 호에서 짐을 집으로 보내달라는 메모지와 주소가 발견됐다. 김수산, 윤수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이 후에 극작가 김우진과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윤심덕은 1920년대 신여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조선 최초 국비 유학생, 최초 소프라노이자 대중가수였다. 윤심덕과 김우진은 일본 유학 때 만난 사이로 김우진이 당시 유부남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만남을 지속했다. 당시 윤심덕 김우진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한 나머지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추정됐답니다.

사건 발생 이틀 후 윤심덕이 사고 직전 음반을 녹음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원래 26곡을 녹음할 예정이었지만 윤심덕 요청으로 '사의 찬미'라는 곡을 한곡 더 녹음했다. '사의 찬미'는 '다뉴브 강의 잔물결'에 윤심덕이 직접 가사 붙인 노래로 윤심덕이 '사의 찬미' 녹음을 하면서 하염없이 눈물흘렸다는 일화도 전해졌다.

사고 발생 일주일 후 윤심덕 '사의 찬미' 앨범이 발매됐고 전대미문의 판매고를 올렸다. 그런데 윤심덕 '사의 찬미'가 일본, 조선 양국에서 인기를 얻을 무렵 이탈리아에서 윤심덕 김우진을 봤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윤심덕 김우진 두 사람이 살아있다고 믿은 사람들은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점, 윤심덕이 동생 윤성덕에게 자신을 찾지 말라고 편지를 보낸 점, 당시 유부남과 처녀의 연애가 용납되지 않을 정도는 아니어서 자살을 선택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점 등을 들어 생존설을 주장했습니다.


윤심덕 생존설과 관련돼 닛토레코드사에서 노래를 히트시키기 위해 꾸민 일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런 가운데 이탈리아 영사관은 이탈리아 내에 김우진 윤심덕이라는 이름의 사람들이 살지 않는다고 공식 통보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윤심덕 김우진 두사람이 다른 이름으로 살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사건이 발생한지 9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Posted by nikeh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