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897년 7월 25일
고향 출생지
조선 평안남도 평양부
사망
1926년 8월 4일 (향년 29세)
대한해협??
주요 학력
평양숭의여자중학교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 / 졸업)
도쿄음악학교 (갑종사범과 / 수료)
과거 직업
가수, 성악가
장르
서양 고전음악, 대중가요
'사의 찬미' 남기고 실종된 윤심덕 죽음 둘러싼 미스터리, 90년 흘렀어도 여전히 미궁
- 2011. 6. 5.
6월 5일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갑자기 실종된 조선 최초의 대중가수인 '사의 찬미' 윤심덕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추적했습니다.
1926년 8월 부산을 향하던 배 도쿠주마루 호에서 짐을 집으로 보내달라는 메모지와 주소가 발견됐다. 김수산, 윤수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이 후에 극작가 김우진과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윤심덕은 1920년대 신여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조선 최초 국비 유학생, 최초 소프라노이자 대중가수였다. 윤심덕과 김우진은 일본 유학 때 만난 사이로 김우진이 당시 유부남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만남을 지속했다. 당시 윤심덕 김우진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한 나머지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추정됐답니다.
사건 발생 이틀 후 윤심덕이 사고 직전 음반을 녹음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원래 26곡을 녹음할 예정이었지만 윤심덕 요청으로 '사의 찬미'라는 곡을 한곡 더 녹음했다. '사의 찬미'는 '다뉴브 강의 잔물결'에 윤심덕이 직접 가사 붙인 노래로 윤심덕이 '사의 찬미' 녹음을 하면서 하염없이 눈물흘렸다는 일화도 전해졌다.
사고 발생 일주일 후 윤심덕 '사의 찬미' 앨범이 발매됐고 전대미문의 판매고를 올렸다. 그런데 윤심덕 '사의 찬미'가 일본, 조선 양국에서 인기를 얻을 무렵 이탈리아에서 윤심덕 김우진을 봤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윤심덕 김우진 두 사람이 살아있다고 믿은 사람들은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점, 윤심덕이 동생 윤성덕에게 자신을 찾지 말라고 편지를 보낸 점, 당시 유부남과 처녀의 연애가 용납되지 않을 정도는 아니어서 자살을 선택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점 등을 들어 생존설을 주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