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길은 1931년에 출생하여 1973년에 사망하였답니다. 그는 한국의 법학자로서, 교육자인데 학력 대학교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정교수를 지냈답니다.
유신헌법의 반대시위 학생들의 체포와 아울러서, 연행에 항의를 제안한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답니다.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민주화 운동가로 인정받았답니다. 그는 지난 1931년 4월 28일 경에 충청남도 공주(고향 출생지))에서 태어났답니다.
참고로 제물포고등학교를 거친 뒤에, 지난 1955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1957년 동대학원에서 법학 석사학위를 받았답니다. 같은 해에 스위스로 유학해 취리히대학교 법과대학을 거쳤으며, 지난 1961년 독일 쾰른대학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답니다.
그해에 훔볼트 장학재단 장학생으로 선정되었으며 이듬해 2월까지 쾰른대학교 외국사법과 아울러서 국제사법연구소 연구원으로 있다가 귀국하였답니다. 이어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몸담았으며 1967년 법과대학 학생과장과 아울러서, 1970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교환교수를 지냈답니다.
그는 지난 1973년 10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회의에서, 유신헌법에 반대한 뒤에 시위를 벌인 법과대학생들의 체포·연행·구금에 대해 총장이 문교부장관에게 항의하도록 제안한 뒤에,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에서 유럽거점간첩단사건에 관해서 수사협조를 요청하자 10월 16일 스스로 중앙정보부로 찾아간 뒤에 10월 19일 중앙정보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답니다.
당시에 중앙정보부는 10월 25일 '스스로 간첩혐의를 자백했으며, 중앙정보부 건물 7층에서 투신을 했다'하였다고 발표하였답니다. 이후 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되기 시작하였답니다. 지난 1974년 12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 전기고문에 의한 타살로 규정을 했으며, 이듬해 한국기독교교수협의회와 아울러서 독일 쾰른대학교 교수들의 진상규명 촉구에 이어, 1988년 10월에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 고문치사 진상규명에 대해 검찰에 제소하였답니다.
하지만, 10월 18일 검찰에서는 공소시효 만료일(1988년 10년 16)이 지나 증거를 포착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사 중단을 발표하였답니다. 지난 2000년 10월 대통령 직속 한시적 기구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한 뒤에, 지난 2002년 5월 27일 경에 위원회에서 구제를 결정함으로써 민주화운동가로 인정받았답니다.